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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무리 방치 이글루라지만 이것만은 뭐라도 제때 말을 좀 꺼내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컴퓨터 앞에 들러붙어 글을 써봅니다. 시간관계상 감사한 코멘트들의 리리플은 나중으로.ㅠ_ㅠ
![]() 네 거짓이 아니라고 판명된 지 하루 이상이 지난 정보라서 지금쯤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나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4월 1일 Key사 홈페이지에 완전신작시동이란 문구와 함께 Rewrite라는 프로젝트가 공개되었네요. 마에다씨가 시나리오전선을 빠지고, 토노가와씨만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까 궁금했습니다만, 이런 의외의 스탭진으로 뒤통수를 쳐주다니 대체 누가 생각한 건지 참 충격 주는 데는 선수인 것 같습니다. 아, 마에다씨건 용기사씨건 로미오씨건 셋다 선수구나. 사실은 저도 4월 1일 공개되었다길래 당연히 낚시일 줄 알았습니다만, 진짜라니...리버가 발매된 지 벌써 한참이나 지났기 때문에 드디어 프로젝트가 공개되었다는 것이 일단은 기쁩니다. 말했던 대로 정말로 착실하게 진행중이었던 모양이군요. 다른 모든 분들도 그러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저 역시 저 페이지가 뜨자마자 살펴본 것은 스탭진이었습죠. 결과 (일단 시나리오쪽의 충격은 접어두고) 개인적으로는 더할나위없이 만족. 특히 배경 담당의 토리노씨는 퇴사 이야기가 언뜻 들려왔었기 때문에 사실여부를 알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당당히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보고 몹시 기뻤습니다. 아 음악쪽은 그냥 닥찬양해야죠. 리버에서 다소 비중이 적던 히노우에씨는 이번에는 메인인가 보군요. 캐릭터 원안/원화 쪽에 Na-Ga씨의 이름이 없는 걸 보면 이번에는 정말로 이타루 온리인 걸까 싶기도 하고. 사실 Na-Ga씨의 비중이 컸던 리틀 버스터즈를 보면, 작품 자체와 Na-Ga씨의 그림이 상당히 어울렸기 때문에 분위기가 살았습니다만, 이번 작품은 어떨까요. 하기사 시나리오의 컨셉이 완성된 상태에서 원화가를 결정했을 테니 그 점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아도 되겠지요. 클라나드 시절의 히노우에씨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비단 저뿐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변화한 이타루 리얼리티는 또 그것대로 작품의 맛을 살려주길 바라봅니다. 여기저기서 충공깽 소리가 들려오는 시나리오 파트는 아...솔직히 저도 같은 심정. 정말로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하루가 지난 아직도 약간 벙 쪄 있습니다. 무려 다나카 로미오씨와 용기사07씨를 데려올 줄이야. 저는 다나카씨와 용기사씨가 쓰는 시나리오에는 정통하지 않습니다. 플레이해 본 다나카씨의 작품이라곤 단 세 개 뿐이고, 용기사씨의 작품은 달랑 쓰르라미 시리즈 하나. 그렇기 때문에 그 분들의 스타일을 지금까지의 Key의 노선에 맞춰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지식은 없지만......지금 생각나는 의문은 딱 하나 있네요. "Rewrite는 최루게인가?" 이 의문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읽어온 그 분들의 텍스트를 생각해 보면 글쎄요...살짝 아리까리합니다. 토노가와씨와 다나카씨는 그렇다쳐도 용기사씨와 밸런스를 맞춘다고 생각하면 조금 미심쩍기도 하고. 공개된 이미지를 보면 일단 받은 인상은 그냥 대놓고 판타지군요. 어이...그래도 ONE 시절부터 리버까지는 이렇게 티나지 않았어...언뜻 보면 전부 무난한 학원물 같은 인상도 주잖아...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번엔 아무런 위장도 없이 정말로 판타지 삘. 저 옷이 현 일본의 교복이라느니 저 나무가 실은 자기 동네 오래된 나무라느니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 아냐...게다가 카피 문구는 '고쳐 쓸 수 있을까. 그녀의, 그 운명을.' ...이미 현실은 물 건너갔고 현실에 스며든 비현실이냐, 아니면 완전한 비현실이냐의 이중택일만 남았네요... 지금까지 비현실 위에 모든 작품을 구축해 왔던 Key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제 슬슬 완전히 독자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본격적인 판타지물을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해 왔습니다만 아무래도 조금 너무 붕 날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번엔 Key 존속을 건 중요한 실험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개인적으로는 이런 새로운 느낌의 시도도 괜찮은 느낌입니다. 리틀 버스터즈에서 토노가와씨가 맡았던 캐릭터는 코마리와 유이코였지요. 둘 다 최루라고 보기보다는 의외성, 뒤통수, 분위기 반전의 요소가 많았던 스토리들이었고(특히 유이코가 그랬죠), 이런 토노가와씨가 메인 시나리오 줄기를 담당하게 된다면 그런 요소들 역시 보다 빅 스케일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뒤통수나 분위기 반전 등의 요소를 순수하게 놓고 보면 용기사씨의 쓰르라미 시리즈와도 약간 매치가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고. 다나카씨의 경우도 그렇죠, 요즘 유저들에게 다나카씨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크로스채널이란 답이 가장 많이 나올 것 같습니다만, 이것도 유저 입장에서 살펴보면 상당히 스위치가 왔다갔다하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어떻게든 통하는 구석은 있는 세 사람이겠지만, 이게 Rewrite라는 작품에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어떤 느낌으로 나타날지가 관건인데, 공개된 로고를 보면 어라, 저것은 톱니바퀴 모양의 시계...? 자세히 보면 로마 숫자가 보여요. 카피문구도 '고쳐 쓸 수 있을까'. 그렇다는 것은 약 90%의 확률로 이 작품의 키워드 중 하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 첫 추측. 그것을 기준으로 보면 타임 리프라든지, 평행세계라든지 하는 요소도 잔뜩 나올지도 모릅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셋다 물 만난 물고기가 될 텐데(마에다씨가 있었다면 마에다씨 역시도). 하지만 그런 요소는 요즘은 너무 흔하니까요. 분명 아직은 유저가 상상하기 힘든 커다란 키워드가 숨겨져 있겠지만, 일단은 설정에 따라 셋 다 십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컨셉이 될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슬쩍 느낀바를 말해 보자면...다나카씨와 용기사씨를 정말로 무슨 생각으로 투입한 건지 전 정말로 감이 잡히질 않네요. 전 사실상 이번 기획을 토노가와씨가 맡았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Key의 새 주력은 토노가와씨일 터. 그런데도 토노가와씨보다 몇배는 더 네임밸류가 있는 두 사람을 한꺼번에 초빙하는 것은 조금...벌써부터 토노가와씨가 인기 쪽에서 좀 관광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마지않습니다.(...) 이번 신작에서 토노가와씨의 시나리오가 돋보이지 않는다면, 원래 Key의 일부가 아니었던 두 사람만의 듀엣 무대가 되어버릴 테죠. 그렇다면 이 작품이 과연 Key의 작품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Key의 향후를 기대하던 팬들에게 납득받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불안이 조금 들고 있습니다. 물론 공인된 시나리오라이터들이 공인된 스탭들과 함께 공인된 회사에서 작품을 내 준다는 것은 Key의 팬이라는 입장을 떠나 순수히 미소녀게임 유저의 입장에서 기뻐해야 마땅할 일이지만...이렇게 되면 지금껏 울타리를 두른 채 혼자 커오던 Key라는 회사의 경계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시나리오 쪽에서 이미 이런 경우가 일어났으니(사실상 리버에서 이미 음악 측면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엿보였었죠) 추후엔 외부 원화가의 초빙이라든지 하는 경우도 일어날지 모릅니다. 고정적인 인재들만으로 구성돼 있던 지금까지의 Key는, 이제 정말로 볼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일단은 마음을 비우고 좀더 정보가 공개되는 그날까지 기다려보렵니다. 어쩌면 제 추측이 모조리 빗나가 이 글은 순전히 뻘글이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지만(...) 뭐 그건 그것대로 좋다는 셈 치고. 신 프로젝트 기동, 끝까지 탄탄대로이기를 유저의 순수한 마음으로 기대 및 응원해봅니다.
LB_06_6001.zip 크게 上中下로 나눠놓고, 中파일 작업이 50%를 초과한 현시점에서 느지막하게 올려봅니다. 뭐랄까 이건...정말로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도 하고, 리프레인의 재탕은 맘 편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번역들과 비교하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보니 나름대로 신경쓰고 있어요. 이제는 거의들 ColdLeaf님이 작업하신 기존의 번역으로 완클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혹여나 이런 개인적인 번역물이라도 사용해 주실 분이 계시다면 저는 기쁠 겁니다^_^ (※오역/오타 신고 감사히 받습니다! ※별거아닌 스크롤 압박 주의! ※무단전재 금지!) p.s.-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T모님께서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에야 약 3개월 반 전 배포된 T님의 작업본을 보고 심란해진 마음에 이곳에 짧게나마 말씀 올리는 바입니다. 일개 취미에 지나지 않는 번역이고, 떳떳하지 않은 것이라도, 제가 애정을 가지고 시간을 쏟아 친 문장들입니다. T님의 이름이 걸린 작업본에서 대체 역자가 누구인가 싶을 정도로 대량으로 보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조처를 요구드리며,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본 이글루 우측에 기재된 메일 혹은 메신저로 연락 바랍니다. ![]() ![]() 목소리「쿄우스케가 돌아왔다─아!」 멀리서부터 목소리가 난다. 그걸 듣고 잠에서 깨워진 듯 하지만…곧바로 위화감을 깨닫는다. 지금 꾸고 있던 꿈이다. 그것을 필사적으로 떠올려내려 한다. 물론, 악몽은 악몽이었지만…. 지금껏 되풀이해서 꿔왔던 똑같은 '악몽'이 아니다. 내가 꿔왔던 꿈보다도 훨씬 음참하고…구제가 없다. 그야말로 절망이었다. …그런 광경을 나는 모른다. 대체 내 어디에서 끌어내어져서, 지어진 꿈인지…. …아니, 하나 짐작이 갔다. 병설학교에 다니던, 어떤 그룹이, 이번 봄방학에 여행처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것. 신문기사로밖에 모르는 이야기인데도, 어째서 그렇게 리얼하게…. 마치 그 자리에 있던 것 같은…. 이것도 악몽 중 하나로 끼어들게 된다면, 오싹하다…. 두 번 다시 꾸지 않도록 해 주세요. 그리 기도한 직후…. 목소리「드디어 이 때가 왔나….」 기쁨에 차 떨리는 소리. 흥, 하는 콧김소리를 내고서, 그것은 마루 위로 날아내려왔다. 리키「마사토…이런 시간에 어디 가는 거야….」 조심스레 물어 본다. 마사토「…싸움이다.」 리키「…어? 이런 밤중에? 어디서?」 마사토「여기.」 엄지로 바닥을 가리킨다. 불길한 웃음을 남기고, 기세좋게 문을 열어제끼고는 방을 뛰쳐나갔다. 리키「……….」 리키「여기라니…설마 기숙사 안에서?」 리키「우와앗!」 그 사실에 눈치채곤 벌떡 일어나, 마사토의 뒤를 쫓아 복도로 향한다. 멀리서 책상을 거꾸로 뒤엎은 것 같은 소리가 난다. 식당 앞에는,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안쪽을 들여다보니, 아니나다를까, 크게 한 판 벌이려는 두 사람의 모습. 한쪽은 아까전 방을 뛰쳐나간 룸메이트, 이노하라 마사토. 또다른 한쪽은, 하카마 차림의 남자, 미야자와 켄고. 두 사람 다 내 소꿉친구다. 옛날부터 견원지간이라, 의견을 엇가르곤 서로 싸우기를 계속 반복해 왔다. 마사토가 치고 나간다. 몸을 옆으로 비틀어, 주먹을 크게 휘둘러 찌른다. 켄고가 아슬아슬한 곳에서 피한다. 와지끈! 하고 뒷쪽의 테이블이 주먹에 갈라진다. 남학생「역시나, 이노하라….」 남학생「부활동도 안 하고 쓸데없이 단련한 근육을 보란듯이 자랑하고 있어….」 적당한 해설이 들려온다. 이번엔 켄고의 반격. 손에는, 죽도가 쥐어져 있다. 그 손이, 일순 흐릿해 보였다. 마사토「우어억?!」 옆구리를 찔린 마사토가, 비틀댄다. 남자A「갑자기 밀리잖아, 어떻게 된 거야, 마사토─!!」 마사토「시꺼….」 뒷걸음질친 틈을 찔러, 잇달아 켄고의 죽도가 마사토에게 내리쳐진다. 저건 심하다…. 리키「누가 좀 말려줘봐!」 나는 그런 구경꾼들에게 외쳐 본다. 남학생「에─, 이제부터 재밌어지잖아.」 이 두 사람의 싸움은 교내에서는 이미 구경거리가 되어 있다. 리키「하지만, 켄고가, 전력이야…마사토가 다치겠어!」 남학생「그럼, 네가 말리면 되잖아.」 리키「에?」 리키「아아….」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어째서 혼자 당황하고 있던 걸까. 그건 내 나쁜 버릇인지도 모른다. 아는 사람 두 명이 싸움을 시작했다. 고집 센 두 사람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내 친우다. 힘으로 꺾으려 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될 것이다. 나는 달려가서, 마사토를 감싸듯이 그 틈새에 끼어들어갔다. 리키「거기까지…!」 퍽!! 등에 격통이 온다. 리키「…거기까지….」 그리 되풀이한다. 리키「승부는 났어…켄고….」 마사토「나긴 뭐가 나…말리지 마, 리키.」 마사토「반격할 기회를 노리던 것 뿐이야, 방해하지 마.」 마사토가 날 밀어젖히고, 또다시 켄고와 대치한다. 갈채가 오른다. 리키「죽도를 든 켄고를 당해낼 리가 없어!」 마사토「그렇지 않아….」 리키「맞다, 룰을 만들자!」 입을 다물면 금방이라도 재개될 듯한 긴장감 속에서, 나는 생각나는 대로 계속 지껄인다. 리키「맨손이면, 마사토가 너무 세.」 리키「죽도를 들려주면, 반대로 켄고가 너무 세고.」 리키「그러니까….」 구경꾼들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리키「너희들이 뭐든지 좋으니까, 무기가 될 만한 걸 적당히 던져넣어 줬으면 해.」 리키「그건 시시한 것일수록 좋으니까.」 다시 한 번, 마사토와 켄고에게로 돌아선다. 리키「그 안에서 붙잡은 것, 그걸 무기로 해서 싸우기.」 리키「그렇게, 하자.」 마사토「…왜, 네가 룰 같은 걸 만드는데?」 켄고「동감이다. 이건 나와 마사토, 두 사람의 싸움이야.」 나 같은 건 마치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서로 마주본 채 차갑게 말한다. 역시…나로썬 말릴 수 없는 걸까, 이 두 사람은. 그렇다면, 평소처럼 매달릴 수밖에 없다. 리키「쿄우스케!」 나는 그 모습을 찾았다. 리키「…쿄우스케는?!」 남학생「에, 아─, 아까까지 저기서 자고 있었는데.」 그가 가리킨 쪽은 구경꾼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저런 데서 자고 있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미 일어난 거다. 구경꾼들을 헤치고, 그 이름을 외치며, 나는 계속 찾아다녔다. 이윽고 인파가 물러간다. 승부가 난 듯 하다. 남겨진 것은, 쓰러지도록 두들겨맞은 마사토 한 명. 나는 그 모습을 앞에 두고 멍하니 선다. 결국, 쿄우스케는 찾지 못했다. 마사토「…뭐야 동정하냐?」 마사토「걱정 마…켄고 자식도 부상이야.」 리키「그럼 더 걱정되지!」 리키「왜 이렇게 돼버린 거야….」 난 혼자서 걷지 못하는 마사토에게 어깨를 빌려주어, 복도를 걸어 방으로 돌아간다.. 마사토「아야야….」 그런 마사토의, 땀으로 찰싹 들러붙어오는 피부로부터 직접 체온을 느끼면서…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리키「있지, 마사토….」 리키「언제부터, 우린, 이렇게 돼 버린 걸까?」 한때 리틀 버스터즈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 일원이었다. 그, 가장 괴로웠던 나날. 양친을 막 잃고 나서의 나날. 매일 기운없이 우울해하기만 했던 나날. 그런 내 앞에, 4명의 남자아이들이 나타나,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던 것이다. 소년「강적이 나타났어! 네 힘이 필요해!」 소년「네 이름은?」 리키「…나오에, 리키.」 소년「좋았어, 간다, 리키!」 일방적으로 손을 잡고, 날 끌어내듯이 달려나간다. 리키「저기, 너희들은?!」 넘어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따라가면서, 그렇게 묻는다. 소년「우리들 말야?」 소년「악을 징벌하는 정의의 편.」 소년「다른 이름으로….」 소년「리틀 버스터즈야.」 치아를 씨익하고 드러내보이며, 그렇게 이름을 댔다. ─5월 14일 월요일─ 다음 날 아침은 당연하게도 수면부족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마사토는 그렇지 않은 듯, 이미 일어나서, 창 너머의 작은 정원에서 근육단련을 하고 있었다. 그 건강함엔 정말 기가 막혔다. 아침을 먹으러, 마사토와 함께 식당으로 발을 옮긴다. 마찬가지로 잠에서 덜 깬 학생들이 식당에 꽉 들어차 있었다. 그래도 우리들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먼저 온 켄고가 확보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확보랄 것도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그의 주변에 민폐투성이인 우리들이 모여들어올 것을 누구나가 알고 있으니까, 결과적으로 비어있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마사토「요우, 잘 잤냐?」 켄고「아아, 좋은 아침. 너치고는 빨리 왔군.」 켄고는 한쪽 팔을 목에 매달고 있었다. 리키「우왓, 팔, 왜 그래?!」 알아채고, 큰 소리를 낸다. 켄고「아침에 병원에 다녀왔다만….」 켄고「어제 싸움 때문에 뼈에 금이 갔다더군.」 리키「에에에에에에─엣, 그래선, 부활동 못 하잖아….」 켄고「그렇겠지….」 마사토「내가 그랬잖냐, 부상 하나 업혀줬다고.」 리키「그렇게 간단히 말하지 마, 이건, 큰 문제라구!」 켄고「아침식사 자리다, 조용히 해라, 리키.」 리키「어떻게, 켄고는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 건데!」 리키「신인전도 금방이잖아?!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으면서….」 리키「팔이 그래선…못 나갈 거 아냐….」 켄고「그렇겠군….」 리키「아아, 마사토,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뽀각, 하고 때려 둔다. 마사토「아, 뭐야, 해보자는 거냐….」 리키「하긴 뭘 해봐!」 리키「아아─, 바보병이 곪아서 돌이킬 수 없게 됐어….」 마사토「말 한번 지독하게 하시누만….」 켄고「뭐, 나로서도, 이 바보 때문에 신인전이 허사가 된 것은 유감이다.」 리키「그렇지….」 켄고「그러니, 리키.」 켄고가 젓가락을 놓고, 이쪽을 향했다. 켄고「무언가 즐거운 일을 제안해 주지 않겠나?」 켄고의 표정은 시원스럽다. 농담도 아닌 것 같다. 무언가,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그런 가벼운 태도다. 혹시 어쩌면, 검도가, 켄고의 짐? 설마, 빈말이라도 그건 아니다…. 켄고는 자학적으로 시원스런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다. 정말로, 불쌍하게도…. 하지만, 확실히, 뭔가 즐거운 일이라도 있었으면, 하고 나는 생각한다. 옛날처럼, 다같이 함께 매일을 축제처럼 떠들썩한 나날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사토「쿄우스케는?」 켄고「아직 자고 있겠지, 도쿄에서 걸어서 막 도착한 참이니까 말이다.」 마사토「수업은 쌩까고?」 켄고「내버려 둬라.」 둘이 얘기하는 사이에, 나는 아침밥을 목구멍 안으로 쑤셔넣는다. 켄고「너도 큰일이로군.」 차를 마셔 단번에 흘려보낸다. 리키「별로, 좋아서 가는 거니까 상관없어.」 텅 빈 쟁반을 정리하고는, 새 쟁반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을 남기고 나는 식당을 뒤로 했다. 여자기숙사 앞. ![]() 3미터라는 미묘한 거리를 두고, 여관리인이 옆에 있다. 여관리인「그럼, 부탁할게.」 한 마디만을 말하고서, 기숙사 안으로 사라진다. 린을 본다. 겁먹은 듯이 우두커니 서 있다. 리키「아침밥이야, 린.」 그 손을 잡아끌며, 걸어나간다. 린「싫어!」 린이 손을 뿌리치고, 고집을 부렸다. 린「무서운 데에 데려갈 거야!」 린「무서운, 어른들이 있는 데로 데려가는 거야…!」 리키「후우….」 이것도 매일 주고받는 대화다. 리키「괜찮아, 내 방에 가는 것 뿐이니까.」 리키「거기서, 아침밥을 먹는 거야. 계속 그렇게 해 왔잖아?」 린「…정말이야?」 무엇이 린으로 하여금 이렇게 겁을 먹게 하는 걸까. 소꿉친구인 나조차도, 그건 알 수 없다. 옛날엔 이렇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 학교에 진학해 와서부터(린은 자력으로 확실히 시험에 붙은 것이다), 그때부터다. 특히 모르는 사람이나, 암흑을 겁낸다. 마사토도 켄고도 짐작가는 데는 없다고 한다. 이건 믿을 수 있다. 유일하게, 알고 있다고 하면, 오빠인 쿄우스케 뿐이다. 하지만, 그 쿄우스케도, 린의 이 변화에 대해서는 얘기해준 적이 없었다. 그 얘길 물으려고 할 때마다, 쿄우스케는 침묵한 채 날 바라본다. 위압적으로. 그리 되면, 나는 뱀 앞의 개구리나 마찬가지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언제든 쿄우스케는 당해낼 수가 없는 거다. 그래도…. 나는 무리하게 린의 손을 잡아당기며…생각한다. 그것은, 캐묻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지금, 가장 린과 가까운 내가, 알아둬야만 할 일이다. 리키「봐, 내 방이잖아. 마사토도 지금은 없어.」 린「응….」 수제 탁상 위에는, 식당에서 가져온 쟁반이 올려져 있다. 리키「먹자.」 그 앞에 앉힌다. 배가 고팠는지, 합장도 않고서, 곧장 젓가락을 쥐고, 먹기 시작한다. 나는 옆에 앉아, 그걸 지켜본다. 이게 내 일과다. 린「배부르다─.」 전부 긁어담고서, 손발을 뻗는다. 리키「잘 됐네.」 리키「그치만, 편하게 있는 와중에 미안한데, 그다지 시간이 없거든. 이제 학교 갈까?」 린「어느 쪽 학교?」 리키「물론, 린이 맨날 다니는 학교 쪽이지.」 린「그런가.」 린「그럼 못 가줄 것도 없지.」 지금까지 겁먹던 모습은 어딘가로 날아갔는지, 갑자기 누나 행세를 하며 의기양양하게 일어선다. 린「가자.」 이번엔 린이 먼저 말했다. 리키「그럼, 린, 이것 좀 들어줘.」 내 가방을 건넨다. 나는 텅 빈 접시를 겹쳐 올린 쟁반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린의 손을 잡았다. 식당에 쟁반을 돌려놓곤, 린한테서 가방을 받아들고서, 그대로 손을 당겨 밖으로 나왔다. 나는 헤맴도 없이, 또다른 하나의 학교를 향한다. 린「있잖아─, 히이군은, 맨날 계란말이를 풀어 먹는다.」 린「그래서 말야─, 남자라면 한입에 먹어야지 하고 내가 맨날 말해준다.」 리키「뭐, 두 입 정도로 봐주는 건 어때?」 린「남자라면, 한입이어야지─.」 한 걸음, 가까워질 때마다, 가슴이 아파진다. 히이군은, 린의 천진한 웃음을 알고 있구나. 그건 얼마나 부러운 일인지. 정말로…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옛날 같은 우리들로는,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걸까. …도착했다. 그곳은 학교로…. 유아용 가방을 짊어진 어린이들이, 활기찬 목소리를 울리며 앞다투어 출입구로 향해가고 있었다. 린은, 지금 학교를 쉬고 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고는 있지만, 수업에는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병설학교이기도 한 이쪽 학교의…그 특수한 반에 신세를 지고 있다. 요양중이란 명목으로. 그곳은 모두가, 린보다 훨씬 연하로, 린에게 어떤 위해도 끼치지 않는 순박한 아이들 뿐이고…. 선생님도 상냥하고, 마음에 들고, 보호해 주고…. 지금, 린이 올바르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종이 쳤다. 리키「예비종이야. 다녀와, 린.」 린「응.」 리키「히이군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린「리키 얘기는 맨날 해주고 있어.」 리키「그래….」 나는 미소한다. 린도 웃음을 보였지만, 금세 그 얼굴은, 학교 출입구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대로, 활기차게 달려갔다. 나는 그 뒷모습이 학교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멀리서. 다리형 복도를 달린다. 혼자 하는 등교. 문득, 어떠한 것이 눈을 끌어, 나는 발을 멈췄다. 예비종도 벌써 쳤다. 금방 수업도 시작될 텐데. 나는, 옆길로 새서 바닥에 내려서곤, 주워올렸다. 갈색으로 바래버린 하얀 공을. 야구부는 거의 활동하지 않는 중이라고 전해들었다. 체육수업 때 누군가 건물 너머로 홈런을 날렸든지, 아니면, 쉬는 시간에, 이 중앙뜰에서 캐치볼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내버려진 공의 이유는 대충 그런 거겠지.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 공이 무언가의 시작을 예감시킨 것이다. 그건, 내 어떠한 기억에 기인하는지는 모른다. 특별히 야구에 추억도 없다. 이상한 일이다. 종이 친다. 나는 그 공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다리형 복도를 따라 서둘렀다. 마사토「어땠냐?」 옆 자리의 마사토가 말을 걸어 온다. 리키「별로, 어떻기는. 평소대로지.」 마사토「근육 상담이라면 언제든 해주겠는데 말이다.」 리키「아니, 거기에 대해선 평생 고민할 일 없을걸.」 교단 끝에 선 학생이, 칠판에 당번 이름을 적고 있었다. 나츠메, 를 중간까지 쓰던 참에, 지우개로 지운다. 뭔가를 되풀이해서 확인한 후, 니시조노, 라고 고쳐 적었다. 점심시간. 나는 빵만으로 재빨리 식사를 끝내고서, 또 바삐 학교를 뒤로 했다. 향하는 곳은, 물론 린이 있는 학교다. 별로 할 얘기는 없다. 그저, 잘 하고 있는지, 보러 갈 뿐이다. 어느샌가 난 보호자 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교문을 돌아, 직원용 출입구로 향한다. 거기서 슬리퍼로 갈아신고, 복도를 나아간다. 1층 제일 안쪽, 그 교실 앞까지. 문 너머로 안쪽을 엿본다. 그곳에는…너무도 평온한 광경이. ![]() 굉장히, 평화로운 풍경이다. 마음놓고, 누나 언니 행세를 하는 린. 똑같이 마음을 놓고, 천진하게 장난치는 아이들. 눈물이 날 것 같을 정도로…평화롭다. 그런데…. 눈물이 날 것 같을 정도로…내 가슴은 아프다. 린이 있을 곳은, 우리들 안에는 이제 없고, 이곳일 수밖에 없는 걸까. 언젠가, 돌아와 주는 걸까. 그런 날이 오는 걸까. 목소리「나오에군?」 선생님이, 모르는 새 내 곁에 서 있었다. 아차…. 지금, 뭔가 대꾸했다간, 울음 섞인 목소리가 되고 말 거다…. 선생님「나츠메상은, 괜찮아요. 오늘도 활기차요.」 보면 알아요, 라는 마냥 나는 끄덕였다. 선생님「달리 뭔가 걱정이라도 있나요?」 선생님의 목소리는 내게도 상냥하다. 나도 이런 사람처럼 될 수 있으면, 린도 안심하고 곁에 있어주는 걸까. 선생님「들어올래요? 다들 밥 먹는 중이지만 나오에상이라면….」 리키「아, 아뇨….」 저런 온화한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다. 리키「린을,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만을 하고서,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떴다. 나는, 상급생 교실 한가운데에 당당히 서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학생들 몇 명인가의 시선이 이쪽에 향한다. 그런 것도 신경 않고, 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리키「쿄우스케.」 ![]() 그 눈은 이미 위압적이었다. 뭘 하러 온 건지 감을 잡은 거다. …이런 걸로 뒷걸음질칠쏘냐. 나는 자신을 질타한다. 리키「린이 어째서 그렇게 돼 버렸는지….」 리키「쿄우스케는 아는 거지?」 쿄우스케「……….」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는 새에도, 나는, 쿄우스케의 시선에 버텨야만 했다. 쿄우스케「…그게 뭐?」 리키「그게 뭐?」 마치 맘에 둘 정도의 얘기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길래, 한순간에 분노가 정점으로 치달았다. 리키「그게, 전부지 뭐야!!」 리키「지금의 린한테 있어서는 그게 전부잖아!!」 말이 봇물 터지듯, 넘쳐나온다. 죽 눌러담아뒀던 것들이. 리키「그것 때문에, 이 학교에서의 생활을…!」 리키「우리하고 보냈어야 할 청춘을 잃어버린 거 아니냐구!!」 리키「린이, 지금, 어쩌고 있는지 알잖아?」 쿄우스케「……….」 리키「린은 말야….」 리키「웃고 있었다구….」 리키「어린애들하고 공부하면서, 피곤해지면 낮잠자면서, 배가 고프면 간식을 먹으면서….」 리키「놀면서….」 리키「웃고 있었어….」 리키「왜 혼자서만, 그런 데서 웃고 있는데….」 리키「왜 그런 데에 가버린 건데….」 리키「죽 우리랑 같이 있었는데….」 리키「반도 똑같고…계속 같이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쿄우스케「잘 됐잖아….」 쿄우스케「웃을 수 있는 곳이 생겨서.」 리키「…에?」 쿄우스케의 의외스런 대사에 나는 할 말을 잃는다. 쿄우스케「그녀석은 말야…원래부터 약해.」 쿄우스케「내가 없었으면, 친구 한 명도 못 만들었을…그런 약하고 근성 없는 녀석이었다구.」 리키「그렇지 않아!」 나는 강하게 부정하지만…. 쿄우스케「그럼 묻겠는데, 너랑 마사토랑 켄고 빼고, 린한테 친구가 있었냐…?」 리키「……….」 그리 물으면,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다…. 쿄우스케「그러면…이러는 게 잘 된 거잖아.」 쿄우스케「웃고 있다며, 친구들하고.」 쿄우스케「잘 됐잖아….」 쿄우스케의 말이 서서히 힘을 잃어 간다. 쿄우스케「지금, 좋은 부분이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쿄우스케「마저 봐도 돼?」 쿄우스케가 자기 책상에 놓인 만화책을 가리켰다. 마침내 분노조차, 넘어서 버렸다. 지금 느끼는 것은…외로움이다. 이미 쿄우스케의 시선은 책에 향해 있다. 하지만, 이걸 위해 여기까지 온 거다. 대답을 듣지 않고선 돌아갈 수 없다. 리키「쿄우스케의 관점은 알겠어….」 리키「그게 변명이라고도 생각 안 해.」 리키「그러니까, 대답해줘. 맨 처음 질문에.」 쿄우스케「……….」 쿄우스케「…그런 대답은 말야.」 쿄우스케「이 세계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아.」 목소리는 작았지만…. 확실히, 마지막에 덧붙였다. ──그건 자기 때문, 이라고. 그리고, 쿄우스케는…. 만화의 세계로 도피하듯이, 껍데기 속에 틀어박혀 버렸다. 교실로 돌아오니, 그런 내 모습을 발견하고, 켄고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쪽으로 오는 것 같다. 켄고「……….」 내가 자리에 앉자, 켄고도 말없이 빈 앞자리에 앉는다. 마사토「…응?」 옆에서 마사토도 그것을 깨닫고 의아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켄고「……….」 켄고는 떠들썩한 학생들을 응시하며, 귀 뒷쪽을 긁는 둥 한다. 얼마간 기다려봐도 아무 말이 없어서, 나는 물어본다. 리키「딴지 안 걸어?」 켄고「뭘?」 리키「1853년에 있었던 사건, '화성과 전쟁'…그럴 리가 없다고.」 켄고「그런 어쩔 도리도 없는 걸 일일이 딴지걸러 오겠나….」 마사토「리키, 틀렸어.」 리키「에?」 마사토「'화성에서 전쟁', 이야. 화성인 같은 게 있을까보냐.」 리키「인류끼리라면, 왜 지구에서 싸우지 않은 걸까?」 마사토「폭발해서.」 그럼 여긴 어디야. 마사토「근데, 왜 그래, 켄고.」 마사토「평소같았음 작별인사도 없이 부활동 일직선이었을 순 성실놈이.」 켄고「이 팔로 부활동 같은 게 가능할 리 없잖나.」 마사토「켁, 그걸 일일이 나한테 들이대서, 양심의 가책으로 괴롭히잔 속셈이냐?」 켄고「아아, 신인전을 허사로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마사토「헷…그걸로, 양심의 가책에 호소하는 셈이냐?」 켄고「우승후보 필두였으니까 말이다.」 마사토「아직 멀었다구….」 켄고「어쩌면, 이걸로 내 인생, 변했을지도 모르겠군.」 마사토「미안하지만…한개도 안 찔린다구….」 리키「몹시 괴로운 것처럼 보이는데….」 마사토「내 근육을 조금 바르면, 낫지 않으려나?」 켄고「낫겠냐, 바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마사토「뭐이….」 마사토「애초에 켄고, 네놈 근육이 흐물쩍~하니까 그렇게 쉽게 금이 갔지, 남 탓으로 돌리기냐!」 마사토「뭐야, 리키, 너임마, 이녀석 세상만사가 근육으로 통할거라 생각하는 근육바보라 행복하겠다~라고라도 말하고 싶은가 본데, 아앙?!」 리키「아니아니아니…(나까지 찌르기야! 마사토 너무 앞서간다!)」 리키「엉망진창이야, 마사토….」 마사토「어, 난 엉망진창이야. 아니, 오히려 엉망진창이 나야.」 켄고「사전에 네 이름을 쳐보면, 엉망진창, 이라고 나오는 건가?」 마사토「어. 말뜻은 파천황이야.」 켄고「그야말로 엉망진창이군.」 마사토「엉거주춤, 도 상관없어.」 켄고「엉덩이털, 도 괜찮겠군.」 리키「그래서, 켄고는 검도부에는 얼굴 안 내밀어?」 미지근한 느낌의 대화가 시작된지라, 걱정돼서 물어 본다. 켄고「부활동 얘기는 쉬는 시간 사이에 끝내 뒀다.」 켄고「나는 당분간, 쉬기로 했다.」 리키「뭐, 나가지도 못할 대회 연습을 보고 있어봤자, 분해질 뿐이니까….」 마사토「젠자앙…안 찔려….」 리키「아니, 마사토를 괴롭히고 있는 게 아닌데….」 켄고「그래서, 여기에 왔다는 거다.」 리키「에?」 얘기가 어떻게 이어지는 건지 잘 모르겠다. 켄고「너는, 아침에 내가 한 말을 잊어버린 건가?」 리키「아침에…한 말?」 마사토「그…육포 끈으로 묶여있는 상태가 어쩌고 뭐 그거…?」 켄고「그런 얘기는 일절 한 적 없고, 앞으로도 안 한다.」 마사토「할지도 모르잖아, 그 육포끈으로 묶여있는 상태의 덩어리를 그대로 깨물어 먹고 싶다, 지금 당장! …이라고 넌 누군가한테 호소할지도 모르잖아!」 켄고「이놈은 내버려 두고, 기억해봐라, 리키.」 마사토의 얼굴을 손으로 멀리 제끼며, 그리 날 재촉한다. 뭔가…켄고가 마지막에 자조적인 말을 했던 걸 떠올려 낸다. ──뭔가 즐거운 일을 제안해 주지 않겠나. …에. 리키「그거 진담이었어?!」 켄고「그렇게 놀라지 마라….」 켄고「마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잖나.」 리키「아니, 켄고치곤 의외구나, 해서….」 마사토「뭐야, 늬들? 둘이서 뭘 하려는 거야?」 마사토「둘이서 비밀 수련을 해서 이따만한 근육을 키우려는 건 아니겠지, 헷, 질까보냐!」 난데없이 바닥에 엎어져서, 기합 넣고 복근운동을 시작하는 마사토. 리키「숨막히는 사람이야….」 마사토「훗! 훗! 암쪼록 신경 마시고 하던 얘기 계속해주시죠─오, 훗! 훗!」 리키「으─음….」 마사토의 거구가 시야 모퉁이에서 바삭바삭 움직이고 있는 걸 가능한한 무시하며, 생각해 본다. 뭔가 즐거운 것…. 켄고는 부상을 입었으니까, 한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리키「장기…는 어때?」 켄고「장기…?」 켄고한테 어울릴 것 같았는데. 켄고「장기라….」 그다지 내키지 않는 것 같다. 켄고「어릴 때 조금 해본 적은 있지만…너는?」 리키「아니, 이제부터 규칙을 배우려고.」 켄고「음….」 불타질 않는다. 켄고「애시당초, 장기는 두 명이서밖에 못 하잖나.」 에? 하고 의외스레 여겼다. 마사토도 끼우고 있었구나. 애초에 부상의 원인은 그 마사토에게 있는데. 켄고는 그런 걸로 사람을 원망하거나 하지 않는 걸까. 그런 거라면, 뭐랄까…남자답다. 마사토「누가 좀 말려…언제까지 시킬 작정이야….」 리키「우와앗!」 땀에 절어 온기를 풍기는 머리가 옆에서 불쑥 나타나서, 놀란다. 리키「아니, 분명 때가 되면 알아서 멈출 줄 아는 어른이겠지 하고….」 마사토「그럴 리가 있겠냐!!」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트집이 돌아온다. 리키「마사토한테, 뭔가 즐거운 일 없을까? 라고 물어봤자, 근육단련 정도밖에 안 나올 테고….」 마사토「뭐야, 늬들도 근육단련 하는 거 아니었어?」 리키「아니야. 켄고도 한가해졌으니까, 다같이 할 재밌는 게 뭔가 없을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마사토「뭐야…둘이서 근육의 도피를 하는 줄 알고, 좀 쫄았잖아….」 리키「마사토도 같이 할 수 있을 만큼 레벨을 낮춘다면….」 나는 또다시 생각한다. 리키「트럼프라든지?」 마사토「우…왠지 머리가 아파….」 리키「트럼프 갖고?!」 상당히 레벨을 낮췄다고 생각했는데…. 리키「색칠공부…라든지…?」 마사토「어…진정됐다….」 켄고「바둑.」 마사토「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켄고「장기.」 마사토「두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사토가 바닥에서 몸부림친다. 리키「아아─, 너무 괴롭히지 마, 마사토도 진지하게 생각해주고 있는 거니까.」 리키「분명 바둑이나 장기를 하는 자기 모습 따위, 켄고가 말하지만 않았으면 평생 생각할 일 없었을 거야.」 켄고「그렇겠지.」 깊게 한숨을 쉬며, 자유로운 손을 펼친다. 켄고「말인즉슨….」 켄고「마사토를 끼운다면 머리를 쓰는 것은 무리라는 뜻이다.」 그 손을 꾹 닫은 후, 그리 정리한다. 리키「뭐, 그렇게 되겠지만….」 켄고「별 수 없지. 운동이라도 상관없어.」 리키「그치만 팔이 그래서야 무리잖아.」 켄고는 목에 걸려 있는 팔을 가리킨다. 켄고「이 손만 쓰지 않는다면 문제없다.」 리키「에에…그러지 마, 뛰거나 해서 흔들리면 분명 아플 거라구.」 켄고「문제없다.」 반박의 여지를 주지 않을 만큼 강하게 밀어붙여진다. 리키「그랬다가 회복이 늦어져도 난 모른다?」 켄고「괜찮다. 나는 마사토만큼 어린애가 아니야.」 그 말은 즉 때가 되면 알아서 멈출 줄 안다, 는 뜻이겠지. 어쨌든, 3층의 창틀 위를 누가 제일 오래 걸을 수 있나 하는, 승부인지 단순한 바보놀음인지 알 수 없는 놀이를 하는 꼴이 되었다(제안은 물론 마사토). 리키「절대로 다른 쪽 떨어뜨리지 마, 덤벙대더라도.」 켄고「알아. 이것은 놀이이면서도, 진검승부다.」 켄고가 수수께끼 캐릭터가 되어 있다…. 이런 녀석이었나…. 마사토「그래도, 지 혼자 떨어지는 건 자업자득이다.」 마사토는 몹시 지 혼자 떨어질 것 같다. 리키「밸런스 감각이랑 집중력이란 점만 봐선, 이미 승패가 갈린 것도 같지만….」 켄고「너도 하는 거다.」 리키「나도 알아….」 휘유우우우우. 바람 부는 창문에 몸을 올려놓는 바보가 세 명. 왠지 켄고의 바짓자락이 펄럭펄럭 난동부리고 있는데. 창가에는 같은 반 아이들이 구경꾼이 되어 몰려들어 있다. 이런 아슬아슬한 게임, 좀처럼 볼 수 없겠지. 가능하면 나도 보는 쪽이었음 했어…. 켄고「이긴 사람부터다.」 리키「응.」 다함께 손을 들어올린다. 리키「가위 바위 보!」 켄고와 내가 주먹이고, 마사토가 보. 마사토「훗…해냈다…혹은, 해치운 건가…?」 켄고「미묘한 감상은 접어두고, 시작해라.」 마사토「……….」 창틀로부터 스타트 지점인 가장 구석끝에 훌쩍 건너간다. 마사토「욥…우옷?!」 마사토「우와아아아아아악──────….」 스타트 지점부터 떨어져 갔다. 켄고「저질렀군….」 리키「뭐,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 부족함은 뭘까(마사토가 3층에서 떨어지고 나서지만…). 등 뒤에서 나는 반 아이들의 떠들썩한 말소리. 그 안에 있어도 느껴지는, 이 쓸쓸함 같은 것은 무엇일까. 아…. 그것은, 린의 부재다. 이런 바보짓을 하고 있을 때, 언제나 린이 있었을 터이다. 그 낯 가리는 린이, 무척 앞에 나서서, 마사토한테 대고 뭔가 쏘아붙이고 있었을 터이다. 아니, 그보다도 더 먼저 마사토가 일방적으로 화를 사서, 린이 직접 발로 차 떨어뜨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림이, 우리들의 일상이었을 터이다. 지금은 이제…쿄우스케마저 없다. 만약, 그 나날을 되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뭘까? 수업이 끝나자, 얼른 나는 가방을 들고, 자리를 뜬다. 마사토「힘들겠구만.」 리키「됐어, 좋아서 하는 거니까.」 서둘러야 한다. 저쪽 학교는 벌써 끝나 있다. 텅 빈 출입문에서 린은 홀로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곳에서 혼자 밖으로 한 발짝이라도 나오면 위험하다고 믿고서. 전속력으로 달려가선, 그리고, 그 모습을 발견하곤 평이한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린은 가만히 있는다. 그 손을 잡아끌어주지 않으면, 정말로 이곳에서 움직일 수 없는 거다. 리키「기다렸지, 미안.」 그 앞에 겨우겨우 다다른다. 린「응….」 유약한 목소리. 린「있지.」 생각난 듯이, 목소리를 끌어올린다. 린「오늘은 오오쨩이랑 사이좋아졌어.」 리키「그래?」 린「재밌는 녀석이라, 즐거웠어.」 리키「잘 됐네.」 린「응, 잘 됐어….」 다시 쓸쓸한 듯이 고개를 떨군다. 즐거운 시간은 끝난 것이다. 리키「자, 또 레논이 기다릴 거야, 가자.」 린은 딱 한 마리 고양이를 기르고 있다. 원래는 더 많이 키우고 있었다. 전부 쿄우스케가 린을 위해 주워온 야생고양이들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변해버린 린으로부터 도망치듯이, 한 마리씩 없어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레논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레논만은 언제까지고 없어지지 않았다. 야생치곤 얌전한 고양이로, 항상 의리있게 린의 귀가를 기숙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기다려 주었다. 리키「다녀왔어, 레논.」 린「다녀왔어….」 그 옆을 지나치자, 린의 뒤를 묵묵히 쫓아온다. 주인을 섬기는 듯한, 바지런한 모습이었다. 밤에는 또, 내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잘 때까지 둘이서 시간을 보냈다. 마사토「다녀왔슴다.」 마사토가 내 연락을 받고, 방으로 돌아온다. 리키「매번 정말 미안해….」 마사토「뭐 트레이닝하는데 장소가 무슨 상관이야.」 실은 마사토도 친구, 없는 거 아닐까…. 마사토「잘 데만 있으면 돼. 운동하느라 피곤해졌고, 나머진 자기만 하면 되니까.」 목소리「자아, 다음엔 무엇을 할까?」 마사토 등 뒤의 그림자가 그리 말했다. 마사토「환청인가…나머진 자기만 하면 되니까…상당히 졸리단 건가….」 리키「아니, 있어…마사토 뒤에….」 마사토「싫어…난 이제부터 쉴거야….」 켄고「기다렸다고, 나는….」 켄고「리키가 혼자 남을 때까지….」 그건 내가 린과 떨어질 때까지라는 뜻이겠지. 그림자가 흔들하고 움직여, 형광등 아래, 그 모습이 드러난다. 켄고「자아, 다같이 무엇을 할까?!」 마사토「어떻게 돼먹은거야, 이놈은…이런 시간에 놀자니…이해가 안 돼!」 리키「그러게…(놀라워…마사토 쪽이 상식인으로 보여!)」 리키「이런 시간까지 기다리지 말고, 둘이서 놀고 있음 좋았을걸….」 켄고「과연 그렇군!」 마사토「아니, 나랑 너만 가지고는 금세 쌈판날걸….」 켄고「말 되는데!」 아아, 켄고오오…. 결국, 그로부터 보드 게임을 하는 꼴이. 먼저 골인하고, 마사토는 잠들어 버렸다. 나도 이제 곧 골이다. 룰렛을 돌린다. 켄고「린은 좀…어떤가?」 켄고가 그리 중얼대듯 물어 왔다. 그 일을 제대로 신경써 주고 있었구나. 조금 안심했다. 리키「으─음…변함은 없어,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몰라도….」 켄고「확실히 어려운 문제로군.」 리키「그치만 그건 린 하나의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해.」 켄고「…음?」 리키「켄고는 쓸쓸하지 않아? 지금, 여기에 린이 없다는 게.」 켄고「당연히, 쓸쓸하지.」 리키「그것 봐.」 리키「그리고, 쿄우스케도.」 리키「죽 다섯이서 놀아 왔잖아.」 리키「같은 학교에 있는데, 지금은 셋이서밖에 놀지 않아.」 리키「달리 친구가 생겼다든가…그런 거라면 몰라도….」 리키「둘 다 그저 껍데기에 틀어박혀 있을 뿐이야….」 리키「그래서, 나는, 우릴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고…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어.」 리키「아, 골이다.」 켄고의 패배가 결정. 이제 룰렛은 돌아가지 않는다. 켄고「그런가….」 켄고「…대단하군, 리키는.」 리키「에에? 대단하다니 당치도 않아…(다치기 전의)켄고에 비하면….」 켄고「아니…린에 대해선…너한테만 완전히 맡겨두고 있으니까….」 리키「어쩔 수 없지…켄고랑 마사토를 보면 무서워해 버리는걸….」 켄고「나 같은 게 가까이 가도 겁만 줄 뿐이야….」 리키「하지만, 어째서 너희 둘은 무서워하고, 나는 괜찮아하는 걸까…몸집이 크면 무서운가?」 켄고「그건 말이다, 리키.」 켄고「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진지하게 말한다. 리키「에에? 그럴 리가, 거부당하기 일보직전 정도 가지고, 좋아한다는 해석은 도저히….」 켄고「겉으로는 그래도….」 켄고「어딘가에 남아있는 것 아닐까. 너를 좋아했던 마음이.」 켄고「어쩌다 보니 네가 괜찮았던 게 아니야. 너를 선택한 거다.」 켄고「그건 자신을 가져도 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리키「으─음…그다지 실감은 안 나지만….」 켄고「만일, 린이 괜찮았다면, 너희들, 이 학교생활에서 교제했을지도 모르겠군.」 리키「아니아니…그런 가능성은 없다구.」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어떤 일상이 되어 있었을까…상상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켄고의 말대로 린이 날 선택해 준 거라면…. 나는 켄고와 마사토를 제끼고, 린과의 사이가 깊어져 있던 것이다. 나와 린이 처음 만났을 때, 이미 두 사람은 린과 친구였었으니까. 린은 전혀 여자아이답지 않으니까(처음엔 남자아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다), 그런 부분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겠지만…. 중학교 때부터 린은 반 남학생들에게 조금씩 인기를 얻고, 그제서야 나는 그 귀여움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좀더 일찍, 켄고나 마사토가, 린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리키「켄고나, 마사토는…그렇게 돼도 돼?」 나는 조심조심 물어봤다. 켄고「뭐가?」 리키「만약, 나랑 린이…사귄다고 해도….」 그리 말하자, 켄고는 폭소했다. 켄고「무슨 신경을 쓰는 거야.」 켄고「우리들은, 계속, 너흰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리키「에…그랬어…? 몰랐어….」 이런 부분에 둔했던 건 나뿐인 건가…. 켄고「너도 린을 좋아하잖아?」 리키「그야 좋아하지만….」 리키「그치만, 린한텐 미안해도 그런 눈으로 본 적은 없고….」 리키「게다가 지금은 저런 상태라, 그럴 상황도 아니고….」 켄고「그렇군….」 켄고「뭐,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네가 이제부터도 곁에 있어 주면, 자연히 나아지겠지.」 켄고「침착하고, 천천히 해나가자.」 리키「응…고마워.」 켄고의 말은 믿음직했다. 린도, 다른 일들도, 점점 나아지겠지. 그리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5월 15일 화요일─ 린「오오쨩한테도, 리키 얘기 할거다─.」 리키「응.」 오늘 아침도 손을 이끌고, 또다른 학교로 향한다. 그곳에 가까워질수록, 린은 활기를 띠어 간다. 그것이, 자신의 한심함을 눈앞에 들이대는 것 같아서…. 굉장히 분하다…. 혼자가 되어 돌아와보니,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무식하게 큰 두 사람이, 교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리키「어쩐 일이야?」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묻는다. 마사토「아니, 이녀석이….」 켄고「따라가지 않더라도, 널 기다리는 정도는 괜찮잖나.」 마사토「래서, 억지로 나까지….」 리키「고마워. 그래주지 않아도 괜찮은데.」 켄고「싱거운 소리 마라. 너도 그랬잖나? 이것은 우리들의 문제라고.」 리키「그랬지….」 리키「그치만, 일단 서서 얘기하는 건 나중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우리들은 교실로 달려간다. 마사토「말렸다, 제때 못 가겠어…!」 켄고「일련탁생이라는 것도 좋지만….」 켄고「여기선 나만 먼저 보내라, 3인분 미리 얘기해 두지.」 리키「어떻게?!」 켄고「이쪽이다.」 켄고가 급정지하더니, 다리복도를 빠져나가, 중앙뜰로 들어갔다. 리키「에?!」 마사토「어디 가!」 켄고「우리들이 협력하면 간단한 일이다.」 켄고「리키, 마사토와 마주서서, 손을 잡아.」 마사토「그래서, 뭘 어쩌라고.」 켄고「너희 두 사람의 힘을 타고, 내가 3층까지 단번에 점프한다.」 마사토「즉 쇼트컷이라는 건가….」 켄고「그리고, 창문으로 빠져들어가면, 그곳은 바로 교실이란 소리다.」 리키「아니, 내 힘으론….」 켄고「마사토의 힘과 내 도약력을 얕보지 마라.」 마사토「그렇게 나온담, 안 하고 배길 순 없지….」 그런 게 가능한 걸까…. 켄고「헤맬 시간은 없다. 각오를 굳혀라, 리키.」 리키「아니, 무리라니까, 완전히. 게다가, 켄고 한쪽 팔 부상은 어쩌고.」 켄고「그러니까 내가 뛰는 쪽 아닌가.」 켄고「아무 문제도 없다. 와라!」 마사토「오케.」 마사토가 내 양팔을 잡는다. 거기에 켄고가 발을 올리고, 우리 어깨를 잡고서 섰다. 켄고「봐줄 필요는 없다.」 마사토「나도 알아…간다, 리키.」 리키「으…응….」 마사토「헛─둘!」 한 번 내렸다가…. 마사토「간다아아아──!!」 켄고「와르아아아앗────!!」 부웅! 나는 마사토의 힘에 끌려갈 뿐이었다. 그러자 켄고는, 내가 백드롭이라도 건 마냥, 뒷쪽으로 날아갔다. 마사토「클났다, 거의 수평이다!」 돌아보니, 켄고는 벚나무에 머리부터 처박히러 가는 참이었다. 켄고「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우당쿠당탕타───앙!! 엄청난 소리가 나고, 몇 개인가의 나뭇가지와 함께, 땅으로 떨어진다. 리키「으와, 이미 골절당한 사람한테 더욱 큰일이!!」 마사토「켄고오───!!」 둘이서 달려간다. 켄고는 엎어져 있는 채였다. 마사토「클났다, 죽었을지도….」 리키「이런 두꺼운 가지가 부러질 정도였는걸…큰일났네….」 마사토「어─이, 켄고….」 떨어진 가지로 그 등을 찌르는 마사토. 그것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사토「우오, 움직였다!」 이윽고 그것이 돌아눕는다. 그 얼굴은…웃고 있었다. 켄고「핫───핫핫핫핫!」 마사토「뭐, 뭐야 이놈….」 마사토「몰라, 무서워 리키…냅두고, 가자….」 리키「아니,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데…놔두고 갈 순….」 결국 세 명 다 지각. 더군다나 켄고는 머리에 붕대를 감게 되어, 반 아이들이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이고 물었지만, 그 코미디 같은 사건은 말할 수 없다. 단지 한 마디, 마사토도 세졌구나, 라고 흘렸을 뿐. 학생「뭣이…팔 다음엔, 머리…즉 미야자와는 이노하라한테 2연패했단 말인가….」 학생「이노하라 자식…어느 틈에 근육 이외의 부분도 키워둔 거야….」 학생「바보가 아니었나….」 그 때문에, 반에서 마사토의 평가가 올랐다. 단 이것도 이상한 이야기인 게, 그토록 프라이드 높은 켄고가, 설마 스스로 마사토한테 굴했다고 농담으로라도 입에 올리다니, 이제껏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마사토「뭐지…난 이겨버린 건가…?」 옆에서는, 자기 소문으로 떠들썩한 반 아이들을 앞에 두고, 마사토가 얼이 나가 있다. 마사토「깨닫지 못했어….」 마사토「어느 틈엔가, 최강남아라고 칭송받던 그 켄고도 쓰러뜨리고…내가 최고가….」 마사토「기뻐야 할 텐데…이 마음은 뭐지….」 마사토「꼭 가슴에 폭 구멍이 뚫린 것 같아….」 마사토「있지, 리키….」 죽은 동태같은 눈으로 날 본다. 마사토「난 이제부터…뭘 목표로 살아가면 좋지?」 리키「아니, 이긴 적 없거든.」 마사토「뭣이, 역시나! 얘기가 너무 잘 나간다 했지…!」 마사토「제기랄, 그 자식…날 가지고 놀아!」 훅! 하고 그 눈에 화염이 깃든다. 이걸로 다시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겠지. 켄고한테는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놀이 제안 같은 걸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만 했다. 죽, 쿄우스케의 등 뒤를 쫓아왔었다. 처음 만났던 날부터, 그 손에 이끌려. 넘어지지 않겠다고, 필사적으로 신경만 쓰고, 생각할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어서…. 다다른 곳에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나도 린도 마사토도 켄고도, 다같이 웃고 있는 시간만이 이어졌었다. 만일 누군가가 침울해져 있어도, 그걸 날려버릴 만한 기세가 있었다. 켄고는 실가가 죽 무도를 따라 온 가계였기 때문에, 중학교 때부턴 그 길로 나아갔지만, 그래도 남는 적은 시간에는 우리들과 있어 주었다. 그것도, 쿄우스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쿄우스케를 중심으로 한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만일, 쿄우스케가 변함없이 우리들과 있어주었다면, 린도 어떻게든 해 주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 쿄우스케마저도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알겠다. 이건, 구실밖에 되지 않지만…. 같은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내가, 그 옛날의 쿄우스케가 되면 되는 거다. ![]() 쿄우스케는, 린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데리고 나와 놀았을 터이다. 린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었을까, 그 동기는 모른다. 어쩌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내가 알 길은 없다. 지금의 두 사람으로부터 들어내기는 곤란하겠지. 그건 마사토나 켄고도 모르는 과거 얘기다. 단, 알 필요도 없다. 괜찮다, 며 자신을 진정시킨다. 나는…'지금'의 린을, 웃게 해 줘야만 하는 것이니까. 다시 한 번, 리틀 버스터즈를 결성하기 위해서. 방과후는, 우리 두 사람만의 시간이다. 방해할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늘어선 학교건물과, 그 너머에 펼쳐진 운동장이나, 푸른 중앙뜰 등을 떠올렸다. 우리들이 사는 곳은 이렇게나 넓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럴 것이다. 방과후, 나는 린을 데리고, 학교를 돌았다. 린은 따라는 와 줬지만, 어딘지 지루한 듯이 날 뒤따라 걸을 뿐이었다. 중앙뜰에서 한 차례 쉬기로 했다. 휴식이라기보다, 생각할 시간이 갖고 싶었다. 어디로 데려가서, 무엇을 해야 린이 즐거워해 줄지를 모르겠어…. 리키「뭐 마실래?」 린「……….」 대답이 없어, 오렌지주스와 스포츠 음료를 사다가, 종이컵을 린에게 건넸다. 벤치에 앉아, 생각한다. 즐거운 일….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쿄우스케는 굉장했던 거다. 놀이의 천재였던 거다…. 새삼스레 실감당한다. 내 평범한 사고로, 린을 똑같이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걸까…. 리키(기죽지 마.) 시간은 있다. 몇 번 실패해도 상관없다. 린이 흥미를 가질 뭔가를 찾아낼 때까지, 나는 할 수 있는 걸 할 뿐이다. 우선은 포기하지 않을 것. 그게 중요하다. 린「……….」 정신이 드니, 린이 걱정스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벤치에 놓인 종이컵은, 이미 비어 있었다. 리키「미안, 슬슬 다른 데 갈까?」 레논이 갑작스레 린 앞에 뛰어나왔다. 그제껏 순종적이고, 얌전한 고양이였던지라 린도 놀란 모양이었다. 어딜 가는지 눈으로 쫓는다. 레논은 땅바닥에 굴러다니던 공에 달려들고 있었다. 몇 번이고 그것을 손으로 긁는다. 더욱이 저쪽으로 굴리며, 그것을 쫓는다. 그저께도 여기 떨어져 있던 공이다. 지저분하기 때문일까. 아무에게도 주워지지 않고, 지금까지 있던 거다. 나는 실내화를 신은 채 다가가서, 공을 빼앗아든다. 레논은 내 손 안의 공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다. 던져 봤다. 레논은 일직선으로 그것을 쫓아갔다. 리키「강아지 같은 녀석이네….」 멀리서 또, 공을 필사적으로 할퀴고 있었다. 린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런 레논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은 흥미가 있는 듯 하다. 리키「린도 해 봐.」 린「응.」 치링, 하고 기세좋게 끄덕이곤, 레논에게 다가가, 똑같이 공을 뺏아든다. 부드럽게 던졌다. 굴러가던 공을 또다시 레논이 쫓는다. 린「…!」 린도, 곧장 그것을 쫓는다. 또다시 뺏아들고, 이번엔 에잇, 하며 있는 힘껏 던졌다. 리키「으와아….」 제일 멀리 있는 풀숲 속에 꽂히더니, 사라졌다. 리키「저건 레논한텐 무리야.」 우리들은, 레논과 함께 풀숲을 뒤지게 되었다. 린「있다!」 걸려 있던 것을 건져올리더니…. 리키「으와아….」 태엽을 감은 장난감처럼, 다음 순간 또다시 그것을 냅다 던졌다. 리키「맘껏 던지고 싶었으면, 그렇게 말을 하지.」 폐부 직전 상태인 야구부 부실로부터, 글러브를 두 개 조달해 왔다. 한쪽을 린에게 건네고, 한쪽을 내가 끼우며, 시범을 보인다. 린「이걸로, 뭘 하는 건데?」 리키「캐치볼이야.」 리키「내가 캐치해 줄 테니까 있는 힘껏 던져도 돼.」 아까 린이 공을 던져넣었던 풀숲까지 걸어간다. 퍽! …내 등에 공이. 리키「아니, 글러브 끼우고 나서…응?」 린을 돌아본다. 리키「오케이. 아까처럼 던져도 돼.」 끄덕이지도 않고, 곧바로 던져 왔다. 완전히 빗나가, 내 머리 위를 높이 빠져나갔다. 리키「뭐, 너무 성급해 말고. 시간은 많이 있으니까.」 교사 벽에 부딪히고 되돌아온 공을 주워서, 린에게 돌려준다. 린은 비틀거리며, 그것을 어떻게든 캐치했다. 리키「그럼, 진정하고, 다시 한 번.」 한 차례 호흡 후 투구. 이번엔 엄청나게 왼쪽으로 빗겨갔다. 리키(어라? 신경쓰고 있는 게 아닌가….) 굴러가는 공을 쫓아가며 생각한다. 첫 투구도 풀숲을 향해 던진 게 아니고, 내 등도, 노렸던 게 아니라면…. 린은…노 컨트롤. 그 결론에 다다랐다. 뭐, 린이 야구를 좋아한단 말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까, 그건 놀랄 일도 아니지만. 그저, 어째서, 공을 던지는 데에 흥미를 가졌는지, 그게 신기하다. 체육수업에서 좋아하게 됐나. 이런 노 컨트롤로? 못하면, 거꾸로 싫어하게 될 것 같은데. 생각하면서도 캐치볼을 계속한다. 만일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면, 내가 운동부족 때문에 린이 던진 공을 뛰어가서 주워오는 운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겠지. 그만큼 린은 노콘이었다. 단, 구속은 있어서, 여자애치고 어깨힘은 강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 생각하면, 던진다는 게 기분좋다, 는 감각도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스트레스 해소도 될 것 같다. 취미가 없는 린에게는 딱 맞는다. 해가 지고, 공이 보이지 않게 돼도, 린은 계속하려고 했다. 리키「린, 이제 어두워서, 공 못 찾아.」 린「뭣이….」 린은 아직 만족하려면 한참 남은 모양이었다. 나는, 잇달아 줄창 뛰어다녀서(중간부턴 걸어다녔지만)…녹초 상태였다. 리키「내일 또 하자.」 리키「린 맘에 들었다면.」 ![]() 리키「그래, 다행이다.」 그런 활기찬 얼굴을, 나는 가까이서 오랜 동안 보지 못했다. 그리운 기분이 든다. 그건 린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 놀았다, 는 것이다. 어쩌면, 이 캐치볼을 계기로, 다른 일에도 긍정적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오늘까지도 린의 손은 이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론 안 되었던 거다. 쿄우스케는, 그저 곁에 있어주기만 한 게 아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 즐거운 일들이 한참이나 더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계속 가르쳐 준 것이다. 나도, 똑같은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린을 계속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일순 불안해지지만,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을 격려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가능한 것은, 나밖에 없으니까. 린은 내가 돕는다. 캐치볼은 이제부터도 매일 계속하자. 린이 즐거워해 준다면, 언제까지고. 노 컨트롤을 고치기 위해서도. 마사토「다녀왔슴다.」 마사토「리키, 침대에 당장 들어가.」 마사토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리 내게 지시했다. 마사토「오늘밤은 이제 소등한다.」 리키「벌써?」 마사토「빨랑 해, 그자식이 올 거 아냐! 숙제가 있으면 그놈이 단념하고 자기 방에 간 다음에, 불켜고 하고서 나한테 보여주면 되잖아!」 리키「아, 아아…응…(베끼는 데까지 이미 포함인 건가!)」 어지간히 드센 태도에, 우선 트집은 접어두고, 들은 대로 얌전히 침대에 들어가기로 한다. 마사토「자는 척 확실히 해. 무슨 일을 당해도 일어나지 마!」 리키「응….」 마사토「그럼, 간다…스위치…ON!」 OFF야, 라고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암흑 속에서,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마사토도 자기 침대로 파고든다. ………. 조용한 밤이다. 차 다니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 끽…. 문 바로 밖에서 바닥이 삐걱대는 소리. 켄고다…틀림없다. 두근두근한다…. 이 감각은…어릴 때 곧잘 했던 숨바꼭질이다. 특히 켄고가 술래일 땐, 엄청나게 무서웠다. 소리도 없이 다가와선, 어느 틈엔가 등 뒤에 서 있거나 하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나는 '갸악'하고 소리쳤었다. …달칵. 손잡이가 돌아가고, 문이 열렸다. 복도에서 이미, 불을 끈 것은 알아챘을 터이다. 그래도 안에 들어오는 건가…. 켄고「아침이다.」 리키「!…!」 나도 모르게 뿜을 뻔 했다. …위험하다. 설마 켄고가 그런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자는 척, 자는 척…. 나는 호흡을 진정시킨다. 켄고「있지….」 켄고「내가 애용하는 물고기 어자 투성이 찻잔을 못 봤나?」 리키「!!!」 더욱 강렬하게 나왔다! 나는 아슬아슬하게 웃음을 참고, 숨을 내쉬는 데에만 전념했다. 그래도, 그걸로 확신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이건 켄고 나름대로의 개그 공세다. 일부러 웃겨서, 자는 척을 깨우려는 심보다…. 마사토도 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틸 셈이겠지. 내가 먼저 웃었다간, 마사토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을 것 같으니까, 절대 마사토보다 먼저 웃어서는 안 된다…. ………. …탕. 단념한 걸까, 문이 닫히고, 켄고의 기척이 사라졌다. 고, 생각했더니, 금세 발소리가 멀리서부터 가까워져 온다. 뛰어오는 것 같다. 타박타박하는 발소리가 방 앞에서 멎는다. …끼익. 켄고「…하아…하아….」 켄고「…내 상투를 못 봤나!」 리키「푸웁!」 무리다. 완전히 뿜어버렸다. 켄고「후…역시 자는 척인가….」 켄고「자기엔 아직 너무 이르지. 일어나들 주실까.」 불을 켠다. 마사토「리키, 너 땜에 들통났잖아!」 리키「아니, 지금 걸 어떻게 참아! 뛰어와가지고, 숨 몰아쉬면서, 상투라니….」 리키「풉!」 마사토「어째 급소에 먹혔나 본데….」 리키「아니, 진짜, 미안하다니까….」 우리가 주거니받거니 하는 걸 보며, 켄고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서 있다. 왠지 분하다. 켄고「자아, 오늘은 무엇을 할까.」 마사토「점심시간에 죽어라 놀았잖아….」 켄고「훗…그런 걸론 한참 부족하지.」 켄고「우린 기숙생활이니까 말이다, 그 점을 살려서 밤에 논다. 이것이 기숙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참맛이 아니겠나.」 마사토「하…참맛이라면 하다못해, 참진미로 해줬음 좋겠고만….」 ……응? 리키「…지금 거, 꼭 괜찮게 말한 것 같았는데…뜻 없지?」 마사토「없어.」 머리 굴려 손해봤어…. 켄고「자아, 뭘 할까, 리키?」 리키「그치만, 오늘, 숙제 많이 나왔잖아? 아직 안 했는데….」 켄고「그런 것도 고려하지 않고, 놀러 왔을 것 같나?」 리키「에…?」 켄고는 방 한가운데로 들어오더니, 마루탁상 위에 노트 다발을 덜썩 내려놨다. 리키「설마….」 켄고「해 놨다. 지금 당장 베껴라.」 켄고가 악의 길로오오오────!!!! 마사토「우횻, 럭키─.」 리키「우횻이 어딨어, 마사토!」 마사토「뭐야, 너도 오늘은 베낄 수 있다구, 우횻이 아니고 뭐냐.」 리키「있지, 마사토…실은, 숙제는 스스로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마사토「뭐, 뭐라고오…?」 마사토「그래서 나는 바보였던 건가….」 켄고「얼른 베껴.」 마사토「우횻, 럭키─.」 결국 마사토는 베끼기로. 나는 같은 시간에, 모든 숙제를 자력으로 해보였다. 상당히 서둘렀더니, 지쳤다…. 켄고「오늘은 이런 걸 조달해 왔다고. 머리쓸 일이 없으니 마사토도 맘에 들어하겠지.」 봉지에서 꺼내든 것은 다트였다. 리키「위험하니까, 절대로 쏘는 중인 상대한텐 던지지 마. 덤벙대더라도.」 마사토「알아.」 푹. 마사토「아야아아아아앗─!!!」 켄고「방금은 느닷없이 들어온, 이 녀석 잘못이다.」 마사토「걸로 옮겨가려고 한 것 뿐이야!」 리키「자 자…다음엔 조심하고.」 켄고「과녁이 어긋났군…고쳐 걸지.」 푹. 켄고「우오오오오오옷─!!!」 마사토「방금은 이녀석 잘못이지?」 리키「아니아니…마사토도 잘못이거든….」 마사토는 먼저 잠들어 버렸다. 다트살을 회수해, 켄고에게 돌려준다. 켄고「내일은 뭘 가져올까….」 켄고는 이미 내일 할 놀이를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리키「있지, 켄고.」 즐거워 보이는 마당에 미안하지만, 얘기하지 않고선 참을 수 없었다. 켄고「왜 그러나?」 리키「린이 있지, 처음으로 새로운 데에 흥미를 가졌어.」 켄고「호오….」 켄고「그건…뭐지?」 리키「캐치볼.」 리키「있는 힘껏 공을 던지는 거 있지. 엄청 열심히.」 리키「즐겁다고 말했어.」 켄고「그런가….」 켄고「그건 잘 됐군….」 리키「응.」 리키「그치만, 어째서, 캐치볼이었던 걸까? 켄고는 뭔가 아는 거 없어?」 켄고「글쎄다….」 리키「어릴 때 있었던 일이라든지.」 켄고「글쎄…지금보다 과거에 짚히는 구석은 없군.」 리키「그래…정말이지 이상하네. 그렇게 컨트롤이 나쁜데.」 켄고「그건, 이제부터도 계속할 건가?」 리키「응. 매일 할까 해.」 리키「아, 어쩌면, 캐치볼 상대라면, 켄고나 마사토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리키「그렇게 열중하는데, 무섭다고 느낄 새도 없지 않을까.」 리키「애초에, 캐치볼은 멀리 떨어져서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이거라면, 다함께 놀 수 있어.」 말하면서도 엄청나게 좋은 생각으로 여겨져서, 흥분되어 버린다. 켄고「……….」 하지만, 켄고의 얼굴은 풀어지긴 커녕, 입도 일자로 닫혀 있을 뿐이다. 리키「뭔가 문제려나…?」 켄고「그런 노콘으론, 캐치볼은 성립하지 않아.」 리키「아니, 그건 그런데….」 리키「…근데, 어? 보고 있었어?」 '그런 노콘'이라 부른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켄고「뭐…중앙뜰에서 그러고 있으면 복도에선 보이니까.」 켄고「너, 거의 공 줍기만 하는 게 다였지.」 리키「그래도, 린이 새로운 데에 흥미를 갖다니 처음 있는 일이야. 공 줍기만 하더라도 난 계속 상대해 주고 싶어.」 리키「그리고 사람수가 많은 편이, 린이 던지는 공을 잡아내기 쉬워.」 리키「다시 다같이 놀 수 있는걸. 분명 그래야만 해야 돼.」 리키「린을 위해서도, 우릴 위해서도.」 나는 켄고가 어째서 찬동해 주지 않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린이 함께 놀게 된다면,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안다. 이제껏 해왔듯이 체력이나 배짱승부같은 놀이는 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소꿉친구를 피한다는 건 너무 비정하지 않은가. 리키「친구잖아, 우리들.」 켄고「음….」 켄고「…아아, 그렇지, 좋아, 하자.」 아직 주저하는 듯한 모양새였지만, 떨떠름히 끄덕여 주었다. 리키「쿄우스케한테도 말해 봐야지.」 리키「그러면 5명, 원래대로야.」 켄고「뭐…그, 힘내라.」 리키「응.」 ─5월 16일 수요일─ 전화로 해도 상관없었겠지만, 얼굴을 보고 얘기하고 싶었다. 전하고 싶었다. 리키「린이 캐치볼에 흥미를 보였어.」 듣는 건지, 아닌 건지, 쿄우스케는 손에 든 만화책 페이지를 넘겼다. 리키「방과후에, 다같이 하기로 얘기가 됐어.」 리키「나도, 켄고도, 마사토도.」 리키「그러니까….」 리키「쿄우스케도 하지 않을래?」 쿄우스케「……….」 리키「쿄우스케, 몸 움직이는 거 잘하잖아.」 리키「지금까지도, 다같이 그렇게 놀았었고.」 쿄우스케「이 내가…그런 데에 이제와서 흥미를 가질 것 같아?」 리키「아니, 그렇게 만화를 보면서 그래본들….」 쿄우스케「만화는 별개야….」 리키「어째서?」 쿄우스케「만화는 언제든 재미있으니까.」 쿄우스케「…그야 가끔 재미없는 것도 있지만.」 쿄우스케「아무튼 읽으면 즐거워.」 ![]() 얼이 나가 있어…. 쿄우스케는 완전히, 먼 데로 가버렸다…. 그 사실을 통감했다. 리키「만약, 내키면 말야, 기분전환 정도로라도…만화 세계도, 액션물이라든지 그런 것만 계속 있으면 피곤하잖아…?」 쿄우스케「…별로. 괜찮아.」 리키「그럼, 기분전환이 아니라도 상관없어….」 리키「아무튼, 우리 넷이선 방과후에 캐치볼 하고 있을 테니까, 언제든지 와…다들 기뻐할 거야….」 쿄우스케「……….」 쿄우스케「…어.」 쿄우스케가 끄덕이는 걸 확인하고 나서, 나는 3학년 교실을 뒤로 했다. 쿄우스케도 변해버렸다. 린이 변하는 것과 동시에. 린이 저리 되어버린 게 쿄우스케 때문이라면, 틀림없이, 그 때문에 쿄우스케도 변해버린 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쿄우스케는 그 대답은 이 세계에는 없다, 고 말했다. 나는 걸으면서, 창 너머 펼쳐진 하늘을 봤다. 파랑의 공간에, 입체적인 하양이 떠다닌다. 거기서 나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를 보려고 한 것이다. 이 세계에 없는 것이라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걸까? 리키「오늘도 캐치볼 할 거지?」 손을 이끌며, 묻는다. 린「응, 물론이지.」 교문을 넘자, 의리있게 기다리고 있던 레논도 뒤를 따라온다. 리키「캐치볼은 보통, 둘이서 하는 거지만….」 리키「다같이 하면 더 즐거울 거라고 생각해.」 린「…다같이?」 노골적으로 안색을 바꾸고, 내 손을 거꾸로 잡아당긴다. 린「다같이라니, 누구랑.」 걸음마저 멈추고 묻는다. 리키「그야 물론…켄고나 마사토나.」 쿄우스케의 이름은 일부러 빼 둔다. 린「그 녀석들 말인가….」 리키「소꿉친구니까, 상관없지?」 린「짓누르지 않아?」 리키「에? 그 둘이 짓누른 적 있어?」 린「…없어.」 리키「그럼, 앞으로도 없을 거야. 괜찮아. 그 둘은 그런 짓은 절대 안 해. 장난으로라도.」 린「그치만…무서운 녀석들한테 짓눌린 적은 있어.」 리키「에, 언제적 얘긴데?」 린「아주 어렸을 적에. 무서웠어….」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우리들이 모르는 린의 과거에 무언가가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건 추궁하지 말아 두자. 지금의 목적은 그런 게 아니다. 리키「켄고랑 마사토는 절대로 그러지 않아. 그러니까 데려와도 돼?」 린「…그런가.」 린「…그럼, 못 끼워줄 것도 없지.」 리키「그래…다행이다.」 커다란 산턱을 넘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이걸로 4명이다. 다시 그 시절의 4명이 모이는 거다. 그것은 내 가슴을 크게 울렸다. 리키「그럼, 가자.」 또다시 린의 손을 끌고, 의기양양하게 걸어나간다. 여기에 쿄우스케도 와 준다면, 전원이 모이는 거다. 마사토「여어, 오랜만.」 린「오지마, 절루 가, 무서워!」 얼굴을 마주치자마자 마사토를 쫓아내는 린. 역시 린은, 나 이외의 커다란 남자가 무서운 듯 했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는, 그런 가시박힌 말조차 하지 못했다. 겁을 먹고 내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상당히 나아진 셈이다. 리키「그리고, 저쪽에 켄고.」 켄고는 떨어진 곳에서, 상태를 보고 있었다. 켄고「…잘 지냈나.」 떨어진 채 물었다. 린「……….」 린은 애매하게 고개를 꺾었다. 인사는 끝났다. 리키「넷이서면 중앙뜰은 좁지. 그라운드로 가자.」 켄고「글러브는?」 리키「폐부나 다름없는 야구부 부실에 들러서 빌려갈게.」 넷이서 사각형을 만들고 선다. 나는 린과 대각선이다. 리키「그럼, 시작하자. 린, 나한테 던져.」 끄덕이고는, 휘두른다. 슉! 퍽!! 린의 공은 마사토의 고간을 직격했다. 마사토「…잠시만…뭐야, 짰냐…짜고 치는 고스톱이냐….」 신음하며 웅크린다. 리키「아아, 미안, 린은 노콘이거든.」 마사토「그게 뭐야…이런 노콘이 세상에 어딨냐….」 리키「그러니까, 언제든 대비해 둬.」 켄고「그리고, 지금 건 사람이 있는 데로 날아간 럭키한 노콘이다.」 마사토「하? 무슨 말이야?」 켄고「쫓아 달려가서, 때로는 뛰어올라야만 한다는 것도 기억해 둬라.」 마사토「그건…캐치볼이냐?」 리키「그리 생각하도록 노력해 줘.」 마사토「노력이 필요한 거냐….」 켄고「그럼, 린한테 돌려줘라.」 촤좍─────!! 리키「나이스 캐치!」 마사토「오, 오우!」 얼굴까지 흙모래투성이가 된 마사토가 일어서서, 린에게 되던진다. 켄고「우오랴아아압───!!!」 건물 벽을 타고 달려올라, 허공에서 캐치하는 켄고. 리키「굉장해! 슈퍼 플레이다!」 착지와 동시에, 글러브를 옆구리에 끼고, 린에게 되던진다. 나도 지지 않고, 뛰어가면서 백 캐치. 린에게 되던진다. 마사토「헉─헉─.」 켄고「하아…하아….」 날마다 단련을 계속하는 켄고조차도, 숨이 가빠져 있다…. 린「즐거웠어!」 마사토「그야 즐겁겠지, 네 내키는 대로 튀는 공을 쫓느라 흙투성이가 돼서, 뛰고 날고 기는 우리들을 보느라고….」 리키「자, 자, 마사토….」 나도 오늘은 흙투성이다. 켄고「저녁식사 전에 목욕이겠군….」 리키「린, 밥, 조금만 기다려.」 린「응.」 그리고, 어느 틈엔가 린을 둘러싼 원이 작아져 있다는 걸 깨닫는다. 캐치볼을 통해, 린은 둘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거다. 그저 기쁘다. 돌이킬 수 있는 거다, 우리들의 사이는. 나머진…쿄우스케뿐이다. 마사토「좁구만….」 켄고「가져온 건 좋다만, 어디서 먹지….」 두 사람은 저녁식사를 올린 쟁반을 손에 들고 서 있다. 린은 아직, 다른 학생들이 많이 있는 식당에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언제나 둘이서 먹던 내 방에서 켄고와 마사토도 함께 먹기로 한 것이다. 린「너희들한텐 공부책상이 있잖아.」 마사토「왜 여기까지 와서, 늬들한테 등 돌리고 먹어야 되는 건데….」 리키「맞아, 린. 린이 다니는 학교서도 다들 마주보고 먹잖아? 얘기하면서. 그러는 편이 즐겁잖아?」 린「으─음….」 생각한다. 린「그럼, 이러자.」 펑! 하고 탁상으로 쓰이던 종이상자를 차서, 구석으로 치웠다. 마사토「우오옷, 나와 리키의 탁상이!」 린「이걸로 공간이 생겼어.」 리키「아아, 바닥에 놓고 먹자는 건가. 괜찮네.」 리키「그치만 켄고는 탁상을 쓰는 편이 좋겠어. 한 손으론, 바닥에서 그릇을 들 수 없잖아.」 켄고「아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리키「잘 먹겠습니다.」 다함께 손을 맞대고, 그런 다음 먹기 시작한다. 마사토「너, 돼지 키우고 나서부터, 돼지고기 못 먹게 됐었지. 대신 고기 먹어줄게. 꿀꿀이는 건강하냐?」 켄고의 접시에 뻗으려던 손이 팟! 하고 손칼로 가로막힌다. 마사토「제길…안 걸려들기냐….」 마사토「린. 린은, 양배추 키우고 나서부터, 샐러드를 못 먹게 됐었지. 대신 먹어줄게. 양배추맨은 건강하니?」 린「그런 기분나쁜 놈을 알까보냐!」 콰직. 뻗은 젓가락이 린의 발에 차여, 꺾어진다. 마사토「우오오오오오….」 리키「으와아…린, 버릇없게.」 린「이녀석이 멍청한 얘길 하면서 뺏어먹을래니까 그렇지.」 마사토「새 젓가락, 식당까지 가지러 가야 되게 생겼잖아….」 마사토「제길…이대로 먹어주마.」 커다란 몸집을 한 마사토가 엄청나게 짧은 젓가락을 놀리는 모습이, 어째 우스꽝스럽다. 나는 울음이 나올 정도로 얼굴이 풀려 버린다. 그토록 멀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이렇게 눈 깜짝할 새에 돌아오다니…. 오늘은 너무도 즐거운 하루였다. 우정을 되찾은 날이다. 다함께 캐치볼을 하는, 단지 그것뿐인 일이 이때까지의 나쁜 공기를 일소해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면…, 나는 그 앞일을 생각한다. 더 사람을 모아다가, 야구를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과 사이좋아질 수 있다. 분명 그렇게 해야만 한다. 명안 같았다. 야구부도 활동하지 않고 있으니까, 그라운드의 한 귀퉁이를 빌리는 것 정도는 상관없겠지. 그곳에서 야구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손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리얼하고, 활기로 가득찬 그림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을 떠올려 버린 것인가. 그날 밤은, 흥분해서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5월 17일 목요일─ 또다시 야구부 부실에 들렀다. 배트를 찾기 위해서다. 그건 간단히 발견할 수 있었다. 목소리「그걸로 뭘 어쩔 셈인가.」 등 뒤에서 목소리가 나서 깜짝 놀란다. 나쁜 일을 비난하는 듯한 목소리다. 그야 슬쩍 배트를 빌려가려고 하고 있긴 하지만…. 두려워하며 돌아보니…. 선생님인가 싶었던 그 목소리의 주인은, 켄고였다. 리키「아니, 4명 있으니까, 캐치볼이 아니라, 2대 2로 시합처럼 해보는 편이 재밌으려나 싶어서.」 이유를 얘기한다. 켄고「넌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있는 건가.」 리키「그러니까, 야구….」 켄고「무엇 때문에.」 어째서 여기까지 집요하게 밀어붙여져야만 하는 걸까…켄고의 생각을 하나도 모르겠다. 리키「다같이 야구하면 즐거울 거 아냐. 그런 데에 이유가 있어?」 켄고「즐겁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다른 놀이라도 괜찮잖나.」 리키「그래도 린이 야구를 하고 싶어한다구. 다른 놀이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던 그 날부터의 린이.」 켄고「……….」 켄고「그렇군…지금 너의 목적은 잘 알겠다.」 켄고「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빠지겠다.」 리키「빠진다고?」 켄고「나머지는 셋이서 해 줘.」 리키「에? 잠깐만 기다려 봐!」 겨우 그 말뜻을 이해하고, 나는 조급해진다. 리키「간신히 넷이 모였는데, 이제부터구나 싶었는데…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대체 왜?!」 켄고「너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다.」 리키「다치고 나서, 제일 나서서 놀았으면서, 어째서 이제와서 빠진다는 거야? 린이 싫은 거야?!」 켄고「그럴 리가 없잖나.」 리키「그럼, 이유를 가르쳐 줘.」 켄고「그러니까, 얘기해본들 너는 이해할 수 없어.」 리키「괜찮으니까 말해줘.」 켄고는…얼굴의 반을 손으로 가리며, 괴로운 듯이 대답했다. ![]() 리키「뭐가? 누구랑?」 켄고「지금의 네 행동이…그녀석과.」 리키「그녀석?」 켄고는 대답이 없다. 리키「…쿄우스케?」 어째선지, 그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켄고「……….」 정답인 거겠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의 침묵 후, 등을 돌리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나는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생각하기만 했다. 대체 쿄우스케는 뭘 한 거지? 지금, 나는 배트를 들고 있다. 야구를 하려고 하고 있다. 쿄우스케도 한때 그리했다는 건가? 그런 얘기를, 죽 함께였던 내가 모를 수 있는 건가…. 만났을 때보다 옛날 일이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하지만, 그 '사건'은, 지금의 린의 상태나, 쿄우스케의 입장에 깊게 관계된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그렇게밖엔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 터이다. 또다시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입체적인 하늘을. 어제, 복도에서 본 하늘과 똑같았다. 마사토「뭐야, 치게?」 배트를 들고 나타난 날 보고서 마사토가 묻는다. 리키「…응. 그러는 편이 재밌을 것 같아서.」 마사토「그렇지. 캐치볼만 하는 것보다, 던지고 치는 편이 재밌겠지.」 리키「사실은 2대 2로 시합형식으로 하고 싶었어.」 마사토「어, 되는 거 아니야?」 리키「이제 못 해. 켄고가 빠져서.」 마사토「빠졌다고? 그녀석 안 와?」 리키「응, 안 와.」 마사토「그 다치고 나서부터 맛이 간 켄고가 말야?」 리키「응.」 마사토「머리라도 부딪혀서, 정상으로 돌아갔나….」 리키「글쎄….」 마사토「뭐, 셋이서 하면 되지 뭘. 김새하지 마.」 리키「있지, 마사토.」 리키「다들, 뭘 숨기고 있는 거야?」 마사토「응?」 마사토「숨기는 거라면야, 알려지면 안되잖아.」 농담인 건지, 얼버무리려 하는 건지. 마사토는 알고 있는 건지, 모르는 건지. 내가 보기엔…알고 있는 것 같다. 모르는 것은, 나와 린 뿐이다, 분명. 리키「가르쳐줘, 내가 모르는 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사토「……….」 마사토는 아무 말이 없다. 하지만 나는 질책하듯이 계속한다. 리키「야구 말이야, 야구에 관한 거야.」 리키「이 배트를 꺼냈더니 켄고의 태도가 일변했어.」 리키「아니….」 생각해봐. 리키「애초에, 캐치볼은 멀리 떨어져서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이거라면, 다함께 놀 수 있어.」 켄고「……….」 리키「뭔가 문제려나…?」 리키「애초에 켄고는 캐치볼 얘기를 한 시점에서 좋다는 태도가 아니었어.」 리키「그토록 노는 데 적극적이었는데, 이상해.」 리키「이상하지 않아?」 마사토「……….」 그런 간단한 질문에도 마사토는 입을 다문 채다. 나는 계속한다. 리키「…켄고는 이런 내 행동이, 쿄우스케랑 겹쳐보인다고 했어.」 리키「쿄우스케도, 언젠지는 모르지만, 야구를 하려고 했던 거야.」 리키「그러다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어.」 리키「그 결과로, 린은 사람을 무서워하게 됐고, 쿄우스케는 우리들한테서 떨어졌어.」 리키「그렇게 지금이 된 거야.」 마사토「…그렇지.」 긍정을 얻었다…. 드디어 마사토가 입을 열었다. 나는 뒤이어 마사토가 무엇을 얘기해 줄지, 그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것은 기대하던 것과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 뭐가? 마사토「…나머진 나뿐인가.」 그러니까 뭐가? 마사토는 왼손에 끼고 있던 글러브를 벗어…땅에 떨구었다. 마사토「나도 빠진다. 나머진 맡기겠어.」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떠나간다…. 마사토마저…. 어째서…? 리키「기다려…마사토….」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리키「마사토!」 마사토는 등을 돌린 채, 손을 흔들 뿐이었다. 마사토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바보인…내 친우야…. 그런데…어째서…. 린「왜 그래?」 치링하는 소리와 함께 린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 놀란다. 린「안 해? 캐치볼.」 리키「…해야지…물론.」 리키「하지만…마사토가….」 린「벌써 갔어?」 리키「아니….」 리키「이제 안 온다고….」 린 앞에서 약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는 눈물을 참았다. 린「??」 린「그건…어쩐지 쓸쓸한데.」 리키「응….」 쓸쓸하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 린과 둘만 남아 버렸다. 그래도, 시작하자. 둘만의 캐치볼을. 언제나처럼 방으로 가져와, 저녁밥을 먹는다. 어제는 함께 있던 켄고도 마사토도 와주지 않았다. 빠진다, 는 것은 야구로부터만이 아니라, 함께 노는 것이나, 먹는 것에서마저도 '빠진다'는 의미였단 것을 깨닫는다. 즉 그것은, 친구의 고리에서 나간다, 는 것이다. 린이 돌아간 후,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마사토에게, 그걸 알리는 문자를 보냈다. 금세 답문자가 돌아왔다. 『오늘은 안 가』 조금쯤은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쇼크는 받지 않았다. 그 날 밤은, 혼자서 자는 밤이 되었다. 언제적 이래일까….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잤었던 것 같다…. 지금은 룸메이트인 마사토와 같이 자지만…. 어릴 땐 자주 쿄우스케가 곁에 있어 주었다. 단둘이 되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꿈 같은 시간이었다. ─5월 18일 금요일─ 그래서도, 나는 린과 캐치볼을 계속했다. 린의 컨트롤이 안정됐다. 지금은, 뛰면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 있는 범위로는 던져 준다. 리키「있지, 린.」 그러므로써 이야기하면서 캐치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린「…응?」 팡! 리키「즐거워?」 린「물론이지.」 슉. 팡! 리키「신기하네, 야구 같은 덴 전혀 관심이 없던 린이.」 린「나도 신기해.」 슉. 팡! 리키「어쩌면, 어릴 때 쿄우스케랑 캐치볼 했었던 거 아니야? 아직 철이 안 들었을 때라, 기억이 없을 뿐이고.」 슉. 팡! 린「아니, 쿄우스케랑 한 게 아냐. 리키랑 했어.」 슉. ………. 리키「에…언제…?」 린「모르겠어. 그래서 신기해.」 린「리키….」 린「이 세계는 수수께끼 투성이야.」 그 말에, 내 어깨는 떨린다. 역시, 나와 린만 아무것도 모르는 거다. 하지만, 무언가가 일어났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들은, 그것을 잊어버렸다. 아니, 잊었다, 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모르는 거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확실히 일어났다. 어딘가에서 일어난 거다. 린의 말대로, 이 세계의 수수께끼라 할 수 있으리만치 막연한 문제다. 리키「린, 달리 생각나는 건 없어…?」 린「우─응….」 글러브 윗쪽을 턱에 대고 생각에 빠진다. 비껴간 공은 여전히 내 뒤에 구르고 있었지만,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니다. 린「…있지만, 말 못해.」 리키「에? 있으면 말해줘….」 린「…비밀이야.」 린과 나는 같은 입장이 아닌 건가…? 린마저도, 비밀을 몰래 지니고 있다. 지금의 린의 거동으로 미루어 보면, 그 |